Review

유형정 (송은갤러리 큐레이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바쁘다. 피곤하다. 분야를 막론하고 각자의 일터와 배움터에서 뭔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살아간다. 또 세상 자체의 부조리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념의 대립과 정치적 상황, 그에 따른 전쟁과 기아, 환경파괴, 질병, 난립하는 각종 사기단체들... 그 누구도 이런 상황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마치 개인이 겪는 갈등들이 작은 톱니바퀴로 맞물려가며 거대한 구조물을 형성하고, 그것이 불가항력의 커다란 톱니바퀴가 되어 세상을 움직이는 모양새다. 째깍 째깍... 시한폭탄이 따로 없다. 일상에서의 작은 일탈,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 쾌락, 종교를 통한 구원, 마음의 평화... 지금, 당신의 소망은 무엇인가?

 

노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의 소망을 대변하기도 하는) 작가의 소망을 그 특유의 아기자기한 캐릭터로 소박하게 담아낸다. 달콤한 초콜릿, 부드러운 케익(‘Yummy Cake with Pati & Rudi’), 편히 몸을 기댈 수 있는 의자들(‘Comfy Chair’), 그리고 바쁜 세상에 아주 유용할 내 복제인간(‘Clo Clone’)까지. 우리를 대신해 작은 일탈과 해방감, 그리고 휴식을 누리고 있는 형상들이 우리를 반긴다.

 

캐릭터들은 모두 편안하고 친근감 있는 작은 동물 형상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랑스런 반려동물이나 어린 시절 좋아했던 만화 속 주인공을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붙어 있더라도, 그것이 작가의 부단한 노력으로 완벽하게 마무리된 반짝이는 조각품일지라도, 언감생심 몰래 한번쯤 쓰다듬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 또한 미술품에 대한 작은 일탈이 될 수 있을까? 촉각에의 욕망은 시각적 즐거움을 배로 만든다. (실제 노준의 작품은 전시장에서 파손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가벼운 일상 탈출만을 꿈꾸기엔 암울한 현실들. 노준은 노란 잠수함(‘Sudaru submarine’)으로 이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어낸다. 노란 잠수함에 귀여운 수달 캐릭터(수다루)가 앉아 있다. ‘수다루는 어디로 가는 중일까? 노준은 잠수함이라는 것이, 인류가 개발해 낸 탈 것들 중 가장 비도덕적인 물건이라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상대방을 향해 어뢰공격을 감행하던 잠수함은 노랗고 귀여운 캐릭터가 되어 전투병기로서의 목적을 상실했으며, ‘수다루가 그 위에 천연덕스럽게 올라타 있다. ‘수다루가 잠수함을 타고 향하는 곳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현장일 것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노준의 작품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쌍으로 놓인 흰 물체가 있다. 이것은 노준이 ‘Mother’라고 칭한 것으로, 캐릭터를 만드는 도구가 되었던 석고틀이다. 석고에 켜켜이 먹을 바르고 단계마다 오랜 시간 사포질을 하여 마치 커다란 대리석 덩어리처럼 다듬어진 이 형상은 단순히 ‘Son’ 만들기 위해 제작된 거푸집을 뛰어넘은 또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노준은 매우 부지런한 작가다.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본 사람이라면 작업이든, 인간관계에서든 매사에 얼마나 부단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Mother’ 형상은 10달 동안 온 정성을 다해 아이를 품었다 출산하는 어머니-자궁-의 의미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모성적 존재를 그리워하고 의지하려 한다. 가까이는 우리의 어머니를 통해서, 또 종교나 철학을 통해 그 존재와의 관계를 소망한다. 노준 작품의 제목 머리를 모두 장식하는 ‘Mother & Son’ 처럼. “노준은 짝패를 통해 억압되어 있는 모성적 존재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평론가 이선영, 2006)

 

일상에서부터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물음까지, 작가의 개인적인, 또 우리들의 소망을 담은 노준의 작업들. 삭막하고 불안한 오늘날 우리에게 이보다 반가운 선물이 어디 있을까. 달콤하게, 또는 진지하게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