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노준은 그가 만들어놓은 동물상에 둘러 쌓여있다. 이 동물상은 실제 동물의 본성의 재현이 아니라 추상화된 인공적인 이미지로서의 동물상이다. 작업실은 의사동물들, 만화이미지들, 귀엽고 퍽이나 앙증스러운 캐릭터들이 작은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캐릭터왕국의 주인인 그에게 다가가기위해 나는 그가 만든 의사동물들을 거쳐야 했다. 새삼스럽게 나는 그가 만든 것들이 그와 유사한 존재성을 환기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팬시하고 사랑스러운 의사동물상은 사람과 닮은 꼴이자 한결같이 인간처럼 직립하고 정면을 응시한다. 그 시선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것들은 친근하고 귀엽고 내 손안에 기꺼이 편입된다. 나는 그 사이를 거닐고 그것들을 어루만지고 편애한다. 그는 그가 만든 캐릭터왕국의 주인이자 창조자고 그들의 부모이고 완상의 주체다. 노준은 동물의 모습을 한 도상들을 불러내 자신이 만족할만한 형태와 표정, 컬러를 선택하고 입혀주었다. 그가 상상하고 환상하고 창조해낸 것들을 자기 품안에 거느린다. 따라서 그에게 작업은 작가가 상상한 것들을 회임하고 출산하는 일이자 그것들을 양육하는 일과 흡사하다. 또한 전시는 그렇게 창조하고 품은 것들을 내보이는 일이며 그 존재들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일이다. 그는 부지런히 나무와 돌을 다듬고 철을 가공해 원하는 이미지, 캐릭터를 구한 후에 선명하고 화사한 채색을 했다. 자연의 물질위에 허구적인 이미지가 각인되고 인공의 색채가 입혀지는 몇 겹의 이상한 어긋남이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한 캐릭터를 안겨주는 반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준은 기존 조각이 보여주는 보편적인 관례를 거슬러 동물인형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소재로 이를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여기서 도상과 기법, 이미지와 물질간의 이상한 결합과 낯설음이 동반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니고 있는 귀여운 동물캐릭터를 지지하고 있는 부드러운 천이나 환영적인 영상이미지 혹은 평면이미지에서 벗어나 단단한 경질의 물질과 반짝이는 착색에 의해 동물캐릭터가 현실계에 실재하고 있는 데서 오는 약간의 경이로움이 뒷받침되고 있다. (사실 그러한 방법론 역시 키스 헤링이나 제프 쿤스, 나라 요시토모 등의 예에서 흔하게 접해왔다.) 노준은 나무와 돌, 스테인레스 스틸로 동물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채색을 해서 직립시켰다.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인형이나 애니매이션 캐릭터가 단단한 조각적 재료와 회화적 처리를 통해 우리 삶에 강렬하고 흥미롭게 현전한다. 발리에서 구할 수 있는 티크나 수와르 목재, 사암, 스테인레스스틸를 주로 사용하고 더러 브론즈 작업도 있다. 나무와 돌, 철을 기본 재료(전통적인 조각 재료)로 사용하며 그 위에 발색이 좋고 코팅처리가 우수한, 선명한 우레탄 페인트로 착색을 가한다. 그는 발리와 중국, 한국의 양평작업실을 오가며 현장에서 취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그는 나무를 깎고 돌을 쪼고 공장에서 철과 브론즈로 작업을 하면서 자신만의 캐릭터들을 출산한다. 그가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존재들을 떠올리고 이를 현실계로 끌고 나오는 과정이 그의 작업이다.


 

노준의 작품은 영상이나 만화책의 표면에서 만나던 동물캐릭터가 우리 눈앞에 견고한 형태로 직립하고 있는 데서 오는 흥미로움을 준다. 분명 그의 조각은 현대사회에서 일상화된 키치적 감수성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물론 우리는 이미 무수한 동물캐릭터인형이나 다양한 오브제, ‘달콤한 키치를 접하고 애용해왔다. 알다시피 사람들은 이제 모든 것을 귀여운 캐릭터 안에서 수용하려고도 한다. 키치적인 경험과 태도가 그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특정한 장난감, 애완의 이미지에 둘러싸인다. 여러 동물의 모습을 닮은 인형들과 사물들을 사용한다. 그것은 야성의 동물들을 일상의 삶으로 끌어들이고 지극히 인간의 관점아래 순치시킨, 안전하고 오로지 순응성 아래 침묵하는 의사 인간화된 동물이고 상상되어진 동물이미지다. 그 귀여운 동물상은 따라서 심미성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맥락에서 다가온다. 마음껏 껴안고 접촉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들을 원하게 한다. 따라서 그 대상은 단지 동물상이 아니라 사람을 대리한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는 동물, 자연은 우선적으로 키치로 경험하게 된다. 즉각적인 행복과 위안을 주는 키치적인 취향이 우리시대의 보편적인 정서가 되고 심미성이 되었음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그림자를 드리울까?


 

노준이 만들어 보여주는 이미지는 상상되어진 캐릭터들이다. 그것은 현실계에 존재하지 않는 유사생명체이자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동물주인공들을 닮았다. 차이라면 그가 스스로 만든 캐릭터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기존 캐릭터나 도상에 기생하는 게 아니라 창조되어진 캐릭터이고 그가 스스로 깎고 다듬는 고된 노동과 수고로움에 의해 일으켜진 조각작품이다. 레디메이드를 반복하고 차용하는 전략이라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들과 유사하지만 미세한 차이를 지닌 것들을 만들어내면서 보편적인 익숙함과 친근함 속에 작은 균열을 내고 그 틈에 자신의 도상을 이식한다. 여전히 동물들이 호출되었는데 동물완구와 닮은 이 작품은 만들기의 진정한 의미와 즐거움을 지닌 것으로 작가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노준에게 있어 이 캐릭터를 만드는 일은 타자를 놀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작품이 누군가에게 놀이와 유희의 대상이 되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그 또한 자신이 만든 완구/캐릭터조각들과 함께 놀고 즐긴다. 물론 그에게 그 놀이는 제작과정(노동) 속에 우선적으로 담겨있다. 그리고 그 체험을 관객에게 되돌려주려는 것이다. 따라서 노준의 작품이 단지 키치적인 완구, 동물 인형을 재현하거나 조각적 재료로 가공한 것에 머무는, 그래서 현실과 격리된 비현실의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년의 기억이나 시간과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원초적인 미감과 호기심, 상상력을 최초로 자극했던 그 대상을 다시 대면시키고 그로인해 망실되거나 희박해진 이야기를 생성하게 하는 장을 마련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이에게 유년의 추억, 동물인형이나 완구에 얽힌 사연과 추억을 건드려주고 동화를 들려주고 그 장면을 상상하게 해주는 일말이다. 따라서 노준의 이 캐릭터는 그러한 이야기, 영상이 작동하게 하는 하나의 매개로 자리한다. 분명 그가 만든 귀엽고 앙증맞은 동물캐릭터들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하기에 관객은 감정적으로 공감한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유년의 꿈과 희망, 놀이의 추억, 원초적인 심미성을 건드리기 위해 동물캐릭터를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번 전시 제목을 희망을 잊은 이들을 위한 희망이라고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