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계훈(미술평론가)


  

노준의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대형 테마파크에서 만나는 마스코트처럼 귀엽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귀여움은 밝은 색과 아담한 규모, 그리고 반려 동물이나 그들이 의인화된 인형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캐릭터의 친숙함에서 발생한다.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지나친 주관적 표현성이나 추상적 비물질화와 이론화 때문에 작품 감상의 혼란스러움을 겪는 관람객들에게 노준의 작품은 시각적 경험의 안식처이자 정서적인 평안과 휴식, 그리고 상상력의 해방을 제공해줄 수 있는 대안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조각에 대해 알기 쉽게 가르치는 작업을 해온 그의 작품들은 누구나 쉽고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노준의 작품들이 표피적이고 키치(Kitsch)적인 가벼움에만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레탄 도료로 표면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클로(Clo), 플로(Flo), 수다루(Sudaru), 자라(Zara), 깜찍이(Kkamjigi), 테미(Temmy) 등의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은 세련되고 현대적인 팝아트 작품들로도 분류될 수도 있는데,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첫눈에 들어오는 친근함과 만만함을 넘어 모성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나 존재에 대한 명상과 내러티브의 회복으로까지 연결된다.

 

노준은 자신의 캐릭터들을 가지고 현대미술에서 사라진 문학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통해 예술 감상 시각의 확장을 유도할 뿐 아니라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만들어주는 자연스런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실제로 강아지와 고양이 등의 애완동물을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기르며 그들의 습성과 행동을 관찰해오고 있다. 이러한 그의 관찰에서 지금의 작품들이 탄생하였으며 그들의 행동 특성과 작가가 상상하고 희망하는 우리의 삶이 작품 속에 은유적으로 함축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만고만한 장난감 정도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법한 노준의 작품에는 오늘날의 미술이 갖는 다양한 기능을 함축하고 있다. 2006년 송은미술대상을 받고 2007년 초에 송은갤러리에서 개최한 세 번째 개인전에서 작가는 그의 캐릭터들을 통해 일상에 지치고 위축된 현대인들의 일탈과 해방, 휴식과 구원을 도모하는 상상의 장을 전개하기도 했다. “Mother & Son-Your Wishes"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전시에서는 존재의 유와 무 사이의 관계와 작품의 생성과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에서 실물처럼 맛있게 보이는 케이크 위에 걸터앉은 캐릭터 동물과 스스로의 모습을 복제한 여러 개의 캐릭터들은 현실의 공간에 있는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환상의 공간을 넘나들며 두 세계의 공존을 경험하게 해주며 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노준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함축된 메시지가 간결하며 수사적으로 화려하지 않음으로 해서 선명하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개념작업과 스케치를 거쳐 캐스팅과 채색, 다시 정밀한 다듬기 작업을 반복하여 완성도 높게 탄생하는 작품들은 가히 노동집약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준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팝아트적인 특성은 일상의 평범한 주제가 대중적으로 친숙한 도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특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인이나 애완동물의 친근한 모습 등은 팝아트에서 단골로 선택되는 소재이며 이들을 통한 메시지의 전달효과도 높기 때문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채택되고 있다. 노준의 경우에도 이러한 대중적인 이콘으로의 브랜드화가 가능한 캐릭터들로 작품을 구성하는 전략은 유효하며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의 작품이 지금보다 더 커다란 규모와 도발적인 주제로 확장되어 미디어와 미술시장으로부터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면 관람객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좀 더 폭넓고 다양해질 가능성은 잠재되어 있다.

 

노준은 한동안 미술계를 넘어 방송국에서 클레이 애니메이션 작업에 종사한 적이 있다. 10년 전 쯤 TV로 방영된 깜찍이 소다 광고를 기억하는 이들도 이 작품이 노준의 것이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을 지도 모른다. 깜찍이 소다 CF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달팽이들의 대화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노준은 앞으로 자신이 개발한 다양한 캐릭터들을 가지고 국내외의 여러 곳을 대상으로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도 작가는 종종 그의 캐릭터들을 자신이 방문하였던 일본의 도쿄나 인도네시아 발리 등에 동반하여 그들을 그곳의 어느 장소에 배치해놓고 사진으로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겼었다. 그는 어디를 가나 그곳의 어린이들과 만나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들이 즐겁고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노준은 앞으로 자신의 이름 영문 머리글자를 딴 NJ Entertainment라는 기획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들을 동반하고 세계의 여러 곳을 순회할 예정이다. 그와 그의 캐릭터들이 가는 곳의 지명을 따라 그의 프로젝트는 NJ Entertainment Seoul, NJ Entertainment New York, NJ Entertainment Paris 등으로 소개될 것이며 이러한 순회의 기록은 그곳에서 만난 행복한 관람객들의 추억의 총집합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이러한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되는 셈인 것이다.